무궁화


한국에 일찍부터 무궁화가 있었다는 것을 전해주는 가장 오래 된 기록은 동양 최고의 지리서인 《산해경(山海經)》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 책에는 <군자국에는 훈화초가 있는데,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진다(君子國 有薰花草 朝生暮死)>라는 기록이 있는데, 훈화초는 무궁화를 가리킨다. 《원중기(元中記)》에서도 <군자의 나라는 지역이 천리인데, 무궁화가 많다(君子之國 地方千里 多木槿花)>라고 하고 있으며, 《고금주(古今註)》에도 비슷한 기록이 전한다고 한다. 또한 신라에서도 최치원(崔致遠)이 지어, 효공왕(孝恭王)이 당나라 소종(昭宗)에게 보냈다는 국서(國書) 가운데 한국을 <근화지향(槿花之鄕;무궁화의 나라)>이라 하였는가 하면, 고려 예종 때에는 고려를 스스로 <근화향>이라 자칭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러한 기록들을 종합하여 보면 예로부터 중국인들은 <군자의 나라 동이(東夷)는 사람들의 민족성이 군자답고, 무궁화가 아름답게 피는 나라>라고 예찬함으로써 한국을 <무궁화 피는 화려강산>으로 인식하여 왔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조선시대 광해군 때의 실학자 이수광이 지은 《지봉유설(芝峰類說)》에는 <군자의 나라에 무궁화가 많이 있어 꽃을 피운다>라고 적고 있으며, 숙종 때의 대학자 이익(李瀷)의 《성호사설(星湖僿說)》에도 무궁화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 과거에 장원급제한 사람에게 임금이 어사화(御賜花)를 내렸는데, 어사화의 장식이 무궁화꽃이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는 일제에 의해 무궁화에 대한 날조된 비난과 왜곡이 있었다. 그러나 우호익(禹浩翊)은 <무궁화예찬>이란 글을 통하여 일제의 만행과 왜곡된 허상을 반박하고, 독립의 의지와 민족의 자긍심을 강조하였다. 또한 안창호(安昌浩)·윤치호(尹致昊)·남궁억(南宮檍) 등도 무궁화에 대한 사랑으로 민족정기를 일깨우려 하였다. 국화(國花)로서의 무궁화는, 국기(國旗)나 국가(國歌) 같이 확실한 법규정이나 역사성을 갖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무궁화는 3000여 년 전부터 민족정서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인용되었고, 더욱이 1948년 정식 채택된 국가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란 후렴구를 사용함으로써 국화로서의 의미를 인정 받았다. 또한 입법·사법·행정 삼부(三府)의 표상으로 무궁화가 사용되고, 국기의 봉도 무궁화 봉오리로 제정되어 무궁화는 명실상부한 나라꽃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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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무궁화


사진가: 운영자

등록일: 2004-09-11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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